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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최전선의 대가야 관문성이 발견되다!

경상포커스 2017-09-05 (화) 07:20 6년전 464  


고령의 관문 봉화산에서 대가야시대 석축산성 발굴

 

【경상포커스=전상철 기자】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재)대동문화재연구원이 지난 4월부터 진행하고 있는 고령 봉화산의 봉수대 재현사업부지를 발굴조사했다. 그 과정에서 조선시대 봉수시설 외에도 대가야의 산성이 발견됐다.

 

이 일대는 대가야가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신라와 대치하던 최접경지이자 관문을 지키는 전략적 요충지로 일찍부터 학계에서 주목해왔던 곳이었다. 이 관문성의 축조형태는 대가야 궁성의 대피성인 주산성과 동일한 테뫼식 석축성이며, 군사들이 먹을 물을 보관하던 원형의 석축 저수시설도 확인됐다.

고령군는 성산면의 봉화산 정상부에 위치한 봉수시설의 실체를 확인하고, 이 일대를 정비하고자 시굴조사를 추진했다. 그 결과, 여러 고문헌에 표기된 조선시대 제2봉수로의 간봉(6)이며, 가덕도 천성보에서 칠곡 각산봉수 사이 10번째에 해당하는 말응덕산(末應德山) 봉수의 연조(煙竈)와 물품을 보관하던 건물지가 확인됐다.

이어서 2017년 4월부터 6월 사이에 봉수시설에 대한 정밀발굴조사를 진행하였고, 그 결과 중심시설인 방화벽ㆍ연조자리(3)ㆍ건물지(1)와 주변시설인 방호벽ㆍ건물지(1)가 밝혀졌다. 이와 더불어 봉수시설이 구축되기 훨씬 이전에 조성된 대가야 시대로 판단되는 석축산성의 성벽과 원형 저수시설의 흔적도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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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축성벽은 봉수시설의 무너진 방화벽의 석재들을 조사하는 과정에 확인되었으며, 주변 조사범위 내에서는 6세기 대가야시대 토기편들이 다수 출토됐다.

지난 5월 28일 학술자문회의를 통해 봉화산 유적에 대한 정비를 위해서는 조선시대 봉수시설과 더불어 대가야시대 성곽으로 추정되는 실체를 확인한 후, 이에 대한 정비도 같이 검토돼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됨에 따라 조사기간을 연장하여 대가야 성곽유적(가칭 봉화산성)에 대한 발굴조사를 현재까지 진행 중에 있다.

봉화산성에 대한 발굴조사결과, 돌을 쌓아 축조한 산성은 대가야 시대인 6세기 무렵에 처음 축조된 것으로 파악됐다. 산성의 축조방법은 대가야 왕도의 배후에 자리하며 대가야 석축산성으로 밝혀진 주산성의 축조방법과 동일한 기술이 적용된 것을 확인했다.

성벽은 봉화산의 급경사면을 이용해 편축식으로 구축됐으며, 기초부는 암반면까지 굴착한 후 지대석을 설치한 경우와 기존 암반을 약간 다듬어 그대로 활용한 부분이 확인된다. 두 가지 경우 모두 벽석 하단석은 대부분 들여쌓은 것으로 확인된다.

벽석의 석재는 세장방형으로 대충 가공하여 정연하지 않고 그 모양도 다양하다. 대체로 수평식으로 쌓되 허튼층으로 쌓고 쐐기돌이 많이 사용된 특징을 보인다. 한편 성벽의 하단 외면에는 1m 이내의 거리를 두고 성벽과 평행하게 비연속적으로 구축한 석열이 부분적으로 확인되며, 그 아래로는 암반면을 도포하듯이 정지한 점토층이 확인된다. 

한편, 축조시기를 판단할 수 있는 산성의 기초부에 해당되는 성벽 하단 외부의 정지면 점토층 내부에는 다수의 토기편들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기종은 발형기대ㆍ장경호ㆍ고배뚜껑ㆍ호ㆍ연질호ㆍ장동옹 등으로 전형적인 대가야 토기편으로 확인됐다.

이상과 같이 기초부에서 출토된 유물, 성벽의 축조방법, 산성의 배치양상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봉화산성은 대가야시대에 축조된 석축산성으로 판단된다. 아직 부분적인 조사이므로 산성의 전체규모는 알기 어렵다. 이번 조사에서는 확인된 성벽 약 50m 중 북서편 20m 정도를 노출하여 그 범위의 성벽에 관한 구체적인 양상을 확인했다.

이번 봉화산성 발굴조사의 가장 중요한 성과는 기존 고분 중심으로 진행되던 대가야사 연구범위의 한계를 극복하고 산성을 중심으로 한 대가야의 관방체계 연구의 토대를 마련함과 동시에 신라와 대치하던 당시의 정세와 더불어 대가야의 영역, 교류, 번성과 쇠락 등 다양한 시각과 관점으로 연구 범위를 확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또한 지정학적인 관점에서는 대가야의 왕경과 최단거리에서 신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낙동강변의 관문이라는 전략적 요충지에 설치된 주요 성곽이다.

이 산성과 대가야 궁성까지의 중간 길목에는 별도로 망산산성을 배치해 2중 방어체계를 갖추고 있다. 당시 신라권역의 달구벌(대구)에서 대가야로 향하는 길목에 축조된 점에서 이 성을 대가야의 관문성으로 볼 수 있다. 낙동강 건너 이 산성과 대치하는 신라의 산성으로 위천리 산성이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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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대가야 성곽으로 밝혀진 사례는 대가야 궁성과 대피성인 주산성이 전부이며 아직 그 연구성과가 미미한 실정이다. 이번 조사를 통해 대가야의 국경에 설치된 석축산성의 실체가 처음으로 드러남으로써 향후 대가야궁성을 둘러싸고 주변지역에 배치돼 있는 17개소의 성곽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된다.

이번 발굴조사 성과는 향후 대가야시대 성곽에 대한 발굴조사 자료의 축적과 이를 통한 대가야사의 연구를 통해 고대국가로서 대가야의 역량과 대가야의 역사적 실체를 밝히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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